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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야나부야, 노부부 그리고 삶

by stockupgirl 2023. 12. 9.

나부야나부야 영화 포스터

세월을 담은 할배할매영화

할배할매영화 <나부야나부야>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단천마을에 위치한 오지를 배경으로 한 금슬 좋은 초고령의 부부를 주인공으로 설정합니다. 노부부의 훈훈한 정과 가식 없는 일상의 대화는 때로는 투박하게, 때로는 살갑게 관객들에게 코미디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인생의 교훈을 실천하는 솔직한 언행은 느림의 미학에 담겨 짙은 감동을 준다. 프롤로그는 할머니의 사후, 도회지의 자식들 집에서 기거하다가 봄이 되어 산골 집으로의 귀가입니다. 양철 지붕을 인 산골 집에 빨래가 널리고 홀로 된 할배를 위해 딸은 분주히 집안을 청소합니다. 애기가 된 듯 노인은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지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천식기가 도는 노인의 기침, 등을 두드려 주는 딸, 할머니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백발을 두른 노인의 머리카락이 인상을 남기는 가운데 가늘게 낮게 깔리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이 노부부의 아름다운 시절로 이끕니다. 할배가 호박잎에 앉은 호랑나비를 보고 있는 모습에서 착안한 제목 <나부야 나부야>는 하동군 화개면 단천에서 78년을 함께한 이종수 할배, 열일곱에 중매로 만난 김순규 할매 두 노인이 주인공입니다. 환생의 상징 ‘나부’는 ‘나비’의 방언입니다. 감독은 지리산 해발 600m에 위치한 노부부의 집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수려한 경관에 버금가는 노부부의 삶을 사계절에 담아냅니다.

계절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그들의 대화

<나부야 나부야>에서 풍광도 주인공입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눈 내리는 겨울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겨울 속에 꽃들은 그해의 첫눈을 받아들입니다. 추위가 감도는 듯한 방안 분위기, “영감, 허리 아픈데 좀 누우.”, “내 원이 오래 안 아프고, 한 이틀 아프다가 죽는 게야.”, “죽을 복은 잘 타야..”등의 세상을 초월한 자들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상황설정으로 빨랫줄에 걸린 명태, 시골 부엌 등 일상이 포착됩니다. <나부야 나부야>는 2011년 11월 처음 만나 2012년 1월 방송된 KBS 1TV 「세상사는 이야기」(48화, 오래된 연인 편)의 주인공 노부부를 7년간 관찰한 기록입니다. 2011년 11월부터 2016년 3월까지의 촬영, 2017년 12월에 후반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주인공 두 분은 모두 고인이 됩니다. 2015년 8월에 할매가 혼자 마당에 나갔다가 쓰려져 돌아가셨고, 1년 8개월 뒤 할배도 노환으로 타계했습니다. 주름진 할매의 “이승에서도 그랬으니까, 저승에 가서도 잘 살면 되지.”하는 애정과 감사의 말이 부부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왔음을 보여줍니다. 할매의 애교와 할배의 헌신으로 짠 작품에서 할배는 거동이 불편한 할매 대신 요강을 비우고 씻는 일, 계란 수집과 동태찌개와 같은 요리, 커피타서 마시기와 설거지,빨래까지 하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년의 삶을 보여줍니다. 할배가 설거지를 하면서 “할멈이 어찌나 추위를 타는지…그래서 내가 많이 해줘… 그게 내외간 정 아닌가.”하고 할매는 “나는 앉아 밥이나 먹고..”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영화는 산골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골읍내 모습도 등장합니다. 할배는 아흔이 넘은 할매를 위해 내복과 버선을 사고, 붕어빵을 사는 등 동선을 확대합니다. 설경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영화의 느림을 달래줍니다. 할배는 낮에는 할매를 위해 작은 눈사람도 만들고, 밤에는 TV를 같이 보며 붕어빵을 먹으면서 부부의 정을 과시합니다. 겨울밤은 깊어가고 부부는 다정한 모습으로 잠을 청합니다.

다양한 풍경으로 담아내는 그들의 풍경

감독은 사진 전공자답게 사진 같은 영상을 많이 삽입합니다. 꽃피는 봄이 오자 툇마루에 앉아 하늘거리는 보리밭, 마을을 내려다보며 노부부는 봄을 만끽합니다. 계절의 선호를 묻자 “몸을 함부로 하면 수명이 줄어.” 동문서답이 들려옵니다. 청력이 쇠퇴했음입니다. 피아노 선율이 여리게 따라붙습니다. 여름이 오자, 꼬부랑 할매는 호박밭에 들어가기도 하고, 졸음에 겨운 할배는 툇마루에서 잠 든다. 느긋하게 지켜보는 할매, 느린 개미가 지나갑니다. 은행나무와 단풍이 가을을 묘사한다. 하늘엔 먹구름이 핀다. 다시 노부부의 한해가 겨울로 진입하는 조짐이 보인다. 다시 부엌에 불을 지피는 할배, 영화 속 아궁이는 부부를 상징한다. 감독은 장작을 할매, 부채를 할배로 인식합니다. 할매는 ‘미소 천사’, 할매를 웃게 만드는 건 할배입니다. 불을 붙였는데 부채질이 없다면 장작이 탈 수 없다는 감독, 그래서 영화 속에는 아궁이 신이 많습니다. 감독은 블로킹을 특정하지 않고, 가급적 연출개입을 삼간다. 봄을 청춘, 겨울을 노년이라고 설정한 영화 속에 겨울 신이 많이 투입됩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TV시청, 사탕을 먹거나 일기쓰기는 변화의 일부분입니다. 기상과 더불어 요강을 비우며 일상을 시작하는 할배는 손수 깎은 나무 비녀를 할매에게 선물합니다. 미소가 일품인 할매도 “영감하자는 데로 할께.”하며 남편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삼강오륜을 읽어가는 밤, 세월을 소비하는 방법입니다. 명태처럼 몸은 노쇠해지고, 하나 남은 감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암시합니다. 2014년 12월 31일, 노을을 바라보며 양력 섣달그믐날에 대한 할배할매의 새해를 맞는 이야기는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노련한 자세를 보여줍니다.